테슬라 차량에 탑재된 주행 보조 시스템 화면. 테슬라는 ‘풀 셀프 드라이빙(FSD·감독 필요)’ 컴퓨터를 통해 주행 보조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나, 현재 모든 차량은 운전자의 적극적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 테슬라]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테슬라의 ‘오토파일럿(Autopilot)’과 ‘완전자율주행(FSD)’ 명칭에 대해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운전자의 지속적인 개입이 법적으로 요구되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임에도, 이를 자율주행 기능처럼 인식하게 하는 마케팅이 소비자를 오도했다는 판단이다.
1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차량국(DMV)은 행정법 판사 줄리 콕스(Julie Cox)의 결정을 채택해,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능이 아닌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에 ‘오토파일럿’과 ‘풀 셀프 드라이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캘리포니아 소비자보호법 및 차량 관련 법규를 위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테슬라는 60일 이내에 해당 명칭 사용을 중단하거나, 시스템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율주행 수준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캘리포니아 내 딜러 라이선스는 30일간 정지된다.
이번 판단의 핵심은 기술 자체보다 ‘표현 방식’에 있다.
DMV는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FSD가 국제 표준인 SAE 기준 레벨 2에 해당하며, 이는 운전자가 항상 전방을 주시하고 즉각 개입할 책임이 있는 단계라고 봤다.
외신에 따르면 DMV는 “해당 기능은 과거에도, 현재도 자율주행 차량으로 작동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자율주행을 연상시키는 명칭과 광고가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당국이 문제 삼은 것은 테슬라의 마케팅 문구다.
캘리포니아 당국은 테슬라가 2021년 전후로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별도의 행동을 하지 않아도 단·장거리 주행을 처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표현을 사용한 점을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당국은 이에 대해 “소비자에게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개입하고 있다’는 착각…테슬라 오토파일럿이 만든 회색지대
이 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운전자 개입’에 대한 정의 차이가 깔려 있다.
일부에서는 전방을 주시하며 필요 시 즉시 개입할 준비가 돼 있다면 감독 상태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규제 당국이 정의하는 ‘상시 개입’은 이러한 직관적 해석과 다르다는 게 외신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규제 기준에서 상시 개입이란 단순히 상황을 지켜보는 수준이 아니라, 언제든 지연 없이 물리적 조작이 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때 가장 명확한 판단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이 운전자의 손이 실제로 핸들에 닿아 있는지 여부다.
외신은 “집중 상태와 같은 주관적 요소보다, 손의 위치처럼 측정 가능한 물리적 기준이 규제 판단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테슬라는 이에 대해 오토파일럿과 FSD 관련 설명서와 약관에 “항상 운전자의 감독이 필요하며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는 점을 명시해 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이러한 설명이 소비자가 실제로 인식하는 정보 전달 방식과 괴리가 있다고 봤다.
외신은 DMV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법적 면책 문구는 작은 글씨에 있고, 소비자가 체감하는 메시지는 차량 대시보드와 옵션 명칭에 있다”고 전했다.
◇ 규제에 밀린 표현 후퇴…테슬라가 바꾼 자율주행 언어
한편, 이번 사안은 2022년 캘리포니아 DMV가 테슬라를 상대로 허위 광고 혐의로 제소한 이후 이어져 온 분쟁의 연장선에 있다.
연방 차원에서 오토파일럿 관련 사고를 두고 미 교통안전당국(NHTSA)의 조사가 수년간 진행돼 왔으며, 미국 내 집단소송에서는 자율주행에 대한 과장된 홍보가 차량 가격과 주가를 부풀렸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테슬라도 최근 들어 표현 수위를 조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테슬라는 일부 시장에서 상위 옵션 명칭을 ‘Full Self-Driving (Supervised)’로 변경했고, 캘리포니아에서는 ‘Full Self-Driving Capability’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규제 당국의 문제 제기가 일정 부분 타당하다는 점을 테슬라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 로보택시 비전과 현실 사이…테슬라가 풀어야 할 과제
이번 결정은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테슬라의 장기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를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AI 회사’로 규정하며, 완전 자율주행 기반의 로보택시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제시해 왔다.
다만 외신과 전문가들은 “기술 개발과 별개로, 현재 판매 중인 기능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가 규제 리스크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테슬라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다는 분석이다.
오토파일럿이라는 명칭을 보다 보수적인 운전자 보조 표현으로 수정해 현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과, 캘리포니아가 요구하는 법적 자율주행 기준을 충족해 논쟁의 근본을 해소하는 방안이다.
투자자들은 여전히 미래의 무인 로보택시에 베팅하고 있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운전자가 핸들을 잡아야 하는 기능’이라는 현실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테슬라 앞에 놓인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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