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일라이 릴리(Eli Lilly)]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주사 이후’를 겨냥한 다음 단계를 공개했다.

주사형 GLP-1 치료제로 이미 체중을 감량한 환자들이 주사를 중단하고 경구용 알약으로 전환하더라도, 체중 반등을 유의미하게 억제할 수 있다는 3상 임상 결과를 내놓으면서다.

릴리는 18일(현지시간) 하루 한 번 복용하는 경구용 GLP-1 후보물질 오포글리포론(orforglipron)이 주사형 비만치료제 이후 체중 유지에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뒤 릴리 주가는 장중 2~3% 안팎 상승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 대중적 인지도는 위고비, 감량 효과는 젭바운드

이번 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전에 진행된 SURMOUNT-5 임상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반 대중에게는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Wegovy)가 비만치료제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해당 임상에서 체중 감량 효과는 릴리의 젭바운드(Zepbound)가 더 크게 나타났다.

72주간 진행된 SURMOUNT-5 임상에서 주사 치료 시작 당시 평균 체중은 위고비 투여군이 약 113.5kg, 젭바운드 투여군이 약 115.8kg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치료를 거치면서 감량 폭에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젭바운드 투여군은 평균 체중의 약 20.2%를 감량한 반면, 위고비 투여군의 평균 감량률은 13.7% 수준에 그쳤다.

그 결과 이번 orforglipron 임상에 진입한 시점에서 평균 체중은 위고비 환자군이 약 95kg, 젭바운드 환자군이 약 91kg까지 내려갔다.

즉 젭바운드 환자군은 출발 체중이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사 치료를 통해 위고비 환자군보다 훨씬 더 깊은 체중 감량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 이번 시험은 ‘체중 감량’이 아니라 ‘유지’

릴리가 새롭게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주사로 살을 뺀 뒤, 주사를 끊고 알약으로 바꿔도 체중이 크게 다시 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 ATTAIN-MAINTAIN 3상 임상이다.

즉 이는 체중을 얼마나 더 줄일 수 있는지를 보는 감량 임상이 아니라, 이미 줄어든 체중을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유지(maintenance) 임상이다.

SURMOUNT-5를 완료해 체중 변화가 정체 구간에 들어선 환자 376명을 다시 무작위로 나눠, 한 그룹에는 orforglipron을, 다른 그룹에는 플라시보를 52주간 투여했다. 모든 참가자는 식이 조절과 운동을 병행했다.

1년 뒤 위고비에서 orforglipron으로 전환한 환자군은 평균 0.9kg의 체중 증가에 그친 반면, 젭바운드에서 전환한 환자군은 평균 5kg가량 체중이 늘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젭바운드 환자군의 증가 폭이 더 커 보인다.

그러나 이 결과는 출발점과 함께 해석해야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젭바운드 환자들은 알약으로 전환하기 전 이미 더 낮은 체중까지 감량한 상태였고, 그만큼 체중이 되돌아오려는 생리적 반동 역시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살펴본 SURMOUNT-5와 이번 ATTAIN-MAINTAIN 임상 결과를 종합하면, 위고비 투여군은 평균 체중이 113.5kg에서 95.9kg으로 낮아졌고, 젭바운드 투여군은 115.8kg에서 약 96kg 수준으로 내려간 셈이다.

즉 젭바운드 환자군은 초기 체중 감량 폭이 더 컸던 만큼 유지 단계에서 체중 반등 폭도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으며, 그 결과 임상 종료 시점에서는 위고비 환자군과 유사한 체중 수준으로 수렴했다.

플라시보 그룹의 결과는 이러한 해석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주사를 중단한 뒤 아무 약도 투여받지 않은 환자들은 1년 이내에 평균 9kg 안팎의 체중 증가를 보였다.

반면 orforglipron을 복용한 환자들은 위고비·젭바운드 출신을 가리지 않고 체중 반등 폭이 크게 제한됐다.

릴리는 이를 근거로 orforglipron이 주사형 GLP-1 치료 중단 이후 발생하는 체중 반등을 유의미하게 억제했다고 평가했다.

◇ ‘더 세게’에서 ‘더 오래’로 바뀌는 경쟁

외신들은 이번 임상 결과가 GLP-1 비만치료제 경쟁의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강력하게 체중을 줄일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치료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장기간 이어갈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사형 치료제는 효과가 강력한 만큼 장기 사용에 부담이 따른다. 반면 경구용 치료제는 복용 편의성이 높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릴리는 이미 orforglipron을 비만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신청했으며, 심사 기간 단축이 가능한 우선 심사 바우처도 확보한 상태다.

주사로 체중을 감량한 뒤 알약으로 이를 유지하는 치료 경로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두고, GLP-1 비만치료제 시장의 시선이 릴리의 다음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는 평가다.

kyh-official@economy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