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국내 시중은행이 보유한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이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늘어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KB국민 등 5대 은행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이 올해 들어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달러 예금은 기업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한 후 출금하거나 만기가 되면 원화로 돌려받는 금융상품이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28일 기준으로 1달러당 1470원에 이르는 등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이 달러를 팔러 차익을 거머쥐지 않고 계속 보관하거나 보유액을 더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 원달러 환율 치솟으면서 기업 달러 수요 급증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이 약 537억44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0월 말 잔액(443억2500만달러)보다 21% 늘어난 것으로 올해 들어 최대 증가세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의 달러 수요도 늘어난 여파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달러 예금 투자자는 원화를 달러로 바꿔 예치한 뒤 환율이 오르면 다시 달러를 원화로 전환해 환차익을 실현한다”라며 “현재처럼 기업도 상당한 환차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지만, 정작 달러를 원화로 되돌리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환율 국면에서는 달러가 사실상 안전자산 역할을 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환율 시대를 맞아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환율 리스크를 헤지(회피)하는 전략적인 관점에서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환율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지금이 환율의 고점이라고 여기기가 어렵다”라며 “미래 환율이 더 올라갈 가능성에 발맞춰 달러 보유 전략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특히 수출 기업뿐만 아니라 대다수 제조·유통 기업은 수입 원자재, 부품, 설비 투자, 로열티 지급 등에 달러가 필요하다”라며 “지금 달러를 팔고 원화로 바꾸면 나중에 달러가 필요할 때 더 비싼 환율로 달러를 사야 하는 환차손을 떠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과 미국이 얼마 전 관세협상을 마무리하면서 3500억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처럼 대규모 대미(對美)투자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달러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기업이 달러를 처분하지 않고 거머쥐고 있는 셈이다.
◇ 개인도 달러 처분하지 않고 예금 더욱 늘려
달러 보유 움직임은 일반 개인 투자자도 예외는 아니다.
개인이 5대 시중은행에 보유한 달러 예금 잔액이 지난 27일 기준 122억5300만달러로 지난 8월(116억1800만달러)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 물론 개인, 공공기관 등을 포함해 전체 달러 예금 잔액이 이달 들어 670억1000만달러”라며 “이는 지난 10월 말보다 18% 늘어난 것으로 올해 들어 최대 증가 폭”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등 해외 주식 투자 수요가 커지고 있는 점도 달러 예금 증가와 관련이 있다”라며 “결국 고환율 분위기에서 기업과 공공기관, 개미 등이 달러 처분에 따른 환차익 보다는 달러 보유를 늘려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는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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