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세계 최대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가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이하 워너브러더스)의 영화·TV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사업을 약 100조원대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넷플릭스는 5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워너브러더스의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 등을 720억달러(한화 약 106조원)에 인수하는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주당 인수가는 27.75달러이며, 부채 등을 포함한 기업가치는 827억달러(한화 약 115조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 영화·스트리밍은 넷플릭스로…CNN·TNT는 별도 분사

이번 거래에서 넷플릭스가 가져가는 자산은 워너브러더스의 영화·TV 스튜디오와 HBO·HBO 맥스 등 스트리밍 사업 부문이다.

반면 CNN, TNT, 디스커버리 채널 등 케이블 방송 사업 부문은 내년 3분기까지 별도 법인으로 분사돼 이번 인수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워너브러더스는 이미 지난 6월 이 같은 기업분할 계획을 공개한 바 있으며, 넷플릭스는 인수 절차가 각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12~18개월 내 종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르면 2026년 하반기 거래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워너브러더스는 2022년 AT&T의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의 합병으로 탄생한 기업으로, 해리포터, DC 코믹스, 왕좌의 게임, 프렌즈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방대한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다. 이 IP들이 넷플릭스의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 합류하게 되면, 기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와 결합해 콘텐츠 풀은 한층 더 확대된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카사블랑카, 시민 케인 같은 시대를 초월한 명작부터 해리 포터, 프렌즈 같은 현대의 인기작까지 워너브러더스가 보유한 놀라운 라이브러리가 기묘한 이야기,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 게임과 같은 넷플릭스의 대표작과 결합하게 된다”며 “전 세계를 즐겁게 하겠다는 목표를 더 잘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를 통해 워너브러더스의 기존 운영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밝혔다. 특히 워너브러더스 영화의 극장 개봉을 기존처럼 이어가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넷플릭스가 극장 상영과 스트리밍 병행 전략을 조정하면서 일부 작품을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인수전에 앞서 우위를 점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AMC·시네마크·마커스 등 미국 주요 상장 극장 체인 주가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넷플릭스의 배급 전략 변화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제적 반응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 ‘플랫폼+콘텐츠’ 수직 결합 논란…반독점 심사 최대 변수

[사진 = 미 법무부 반독점국]

한편 미국 경쟁당국과 일부 미 의회 인사들은 넷플릭스와 HBO 맥스가 한 기업으로 결합할 경우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지배력이 과도하게 강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 미국 상원의원은 “넷플릭스와 워너브러더스의 결합은 스트리밍 시장의 경쟁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거래로, 반독점 당국이 매우 엄격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 외신들은 워싱턴 정가에서도 이번 거래가 사실상 ‘플랫폼과 콘텐츠의 수직 결합’에 해당한다는 점을 놓고, 반독점 심사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쟁 인수 후보였던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고려할 때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규제 장벽에 부딪혀 거래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경고 서한을 워너 측에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이번 인수가 완전 불허로 끝날 가능성보다는 사업 구조와 배급 방식 등에 일정 조건을 다는 ‘조건부 승인’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CNN 등 뉴스 채널을 인수 대상에서 제외하고 별도 분사하는 구조를 택함으로써, 여론 독점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 논란을 사전에 차단한 점도 규제 리스크를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최근 미국 정치 환경 자체가 대형 플랫폼 기업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 역시 이번 심사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거론된다.

◇ 스트리밍이 스튜디오를 삼켰다…산업 권력의 중심 이동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즈(K-Pop Demon Hunters)’. [사진 = 넷플릭스]


일각에서는 이번 인수의 산업적 상징성이 단순한 인수·합병(M&A)을 넘어선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디즈니가 픽사·마블·루카스필름을 사들이듯, 전통 스튜디오가 지식재산권(IP)을 흡수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로 스트리밍 플랫폼이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할리우드 대표 스튜디오를 흡수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는 영화 산업의 중심축이 극장에서 스트리밍으로 완전히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를 통해 콘텐츠 제작부터 글로벌 배급, 데이터 기반 추천, 결제·광고 시스템까지 영상 산업의 핵심 가치사슬을 수직적으로 모두 손에 쥐게 된다.

음악 산업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이 음반사 위에 군림하게 된 구조와 유사한 변화가 영상 산업에서도 본격화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하나의 선례가 되면서, 향후 다른 글로벌 스튜디오들 역시 독립 생존보다는 대형 플랫폼이나 미디어 그룹과의 결합 압박을 더욱 강하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규제라는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번 넷플릭스와 워너브러더스의 결합은 이미 글로벌 미디어 산업에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를 던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트리밍이 더 이상 전통 영화 산업의 보조 채널이 아니라, 산업 전체를 규정하는 최상위 권력으로 올라섰음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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