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0’을 중국의 ‘승인된 고객’에 한해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미국의 일자리와 제조업, 납세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미 의회와 안보 진영에서는 중국의 AI 경쟁력을 직접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승인에 엔비디아가 중국에서 H200을 판매해 얻는 매출의 25%를 미국이 가져가는 조건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서는 중국 수출과 현지 공장에 대한 첨단 공정 업그레이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등을 엄격히 제한해온 기존 기조와 대비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 “안보상 민감 기술의 중국 이전을 차단해야 한다”며 장비 반입과 생산 확대를 강하게 통제해왔지만, 정작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에 대해서는 중국 매출의 일부를 미국이 확보하는 조건 아래 AI 연산용 핵심 칩의 판매를 허용한 셈이 됐다.
이로 인해 워싱턴 안팎에서는 “동맹국에는 봉쇄를 요구하고, 자국 기업에는 예외를 적용한 선택”이라는 평가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SNS에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H200’ 중국 수출을 승인했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일자리와 제조업 보호를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사진 = 도널드 트럼프 SNS 캡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엔비디아가 중국 내 승인된 고객을 대상으로 H200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다만 그는 이번 승인 대상이 H200에 한정되며 엔비디아의 최신 주력 제품인 ‘블랙웰(Blackwell)’과 차세대 ‘루빈(Rubin)’ 칩은 중국 수출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책은 미국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제조업을 강화하며 미국 납세자들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직접 통보했으며 “시 주석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이번 조치가 미·중 간 기술 갈등 속에서도 미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을 즉각 환영했다.
엔비디아는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제조를 지원하고 상무부가 상업적 고객을 직접 심사함으로써 경제와 국가안보 간 균형을 맞춘 결정”이라며 “글로벌 AI 생태계 확장과 미국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의회에서는 즉각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크리스 쿤스, 진 샤힌, 잭 리드, 엘리자베스 워런, 브라이언 셔츠, 앤디 김, 마이클 베넷, 엘리사 슬롯킨 등 민주당 상원의원 8명은 공동 성명을 통해 “이 칩에 대한 중국의 접근은 중국 군대에 변혁적인 기술을 제공하고 미국 기업과 핵심 인프라를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며 중국의 경제·제조 역량을 대폭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번 조치가 기존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을 사실상 약화시키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상원의원들은 특히 중국 AI 기업 ‘딥시크(DeepSeek)’의 최근 발언을 근거로 들었다.
딥시크는 최근 “미국이 설계한 첨단 반도체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중국 AI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앤트로픽, 퍼플렉시티, 팔란티어 등 주요 AI 기업들이 대규모 연산 자원을 기반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H200 수출 허용이 중국 AI 산업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다는 우려다.
조지타운대 교수이자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출신인 러시 도시는 “이번 조치는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을 사실상 되돌리는 결정”이라며 “AI 경쟁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팀 피스트 인스티튜트 포 프로그레스 기술정책 책임자는 “H200은 중국이 자국 기술로 2028년 이전까지는 만들 수 없는 수준의 성능”이라고 평가했고, 공동창립자 알렉 스탭은 “H200은 기존 중국 허용 모델인 H20보다 성능이 6배 강력하다. 미국의 연산력 우위는 중국을 앞서게 하는 핵심 수단인데 이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크리스 맥과이어 선임연구원 역시 “미국이 중국에 18개월 뒤처진 AI 칩을 판매하는 순간 미국이 갖고 있던 최대 전략적 우위는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 외에도 AMD와 인텔 등 다른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수출 승인 문제도 상무부가 최종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가 엔비디아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 반도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H200 칩을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국산 반도체 육성을 병행하는 전략을 이어갈 전망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H200의 무분별한 확산을 제한하고 구매 기업들에 화웨이의 ‘어센드(Ascend)’ 등 국산 GPU 대신 엔비디아 칩이 필요한 이유를 소명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중국은 이미 국영 시스템을 중심으로 국산 반도체 기반 AI 운용을 확대하고 있으며 H200은 핵심 분야에만 선별적으로 투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현재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약 4조5000억달러에 달하며 이번 수출 허용 발표 직후 시간외 거래에서 주가가 소폭 상승했다.
외신들은 이번 승인을 두고 “엔비디아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이 백악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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