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를 방문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미 백악관]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인선의 핵심 기준으로 “즉각적인 기준금리 인하 가능 여부”를 공식화하면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케빈 해싯(Kevin Hassett)이 사실상 단독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공화당(GOP) 상원은 해싯 지명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반면, 채권 투자자와 금융시장은 연준 독립성 약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즉각 인하해야 하는지가 인선의 기준이냐”는 질문에 “그렇다(Yes)”고 답변했다.

그는 현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을 향해서도 “똑똑하지 않은 사람” “트럼프를 싫어하는 인물”이라고 공개 비판하며 통화정책 방향을 정면으로 압박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 5월 종료 예정이며, 현재 차기 의장 인선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주도로 비공개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현재 후보군에는 △연준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 △미셸 보먼 △전 연준 이사 케빈 워시 △블랙록 임원 릭 리더 △케빈 해싯 등이 포함됐지만, 트럼프는 최근 “후보가 사실상 한 명으로 좁혀졌다(we have it down to one)”고 발언해 해싯 낙점설에 무게를 실었다.

트럼프 행정부 핵심 경제 참모인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사진 = 미 백악관]


해싯은 트럼프의 초저금리 기조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현재 금리를 인하할 충분한 여지가 있다”고 밝히며 미국 경제가 “매우 변혁적인 국면에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은 이번 주 열리는 올해 마지막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3.50~3.75%로 조정할 가능성이 유력하지만, 트럼프는 그보다 훨씬 낮은 2% 수준의 초저금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해싯의 발언은 이러한 트럼프의 정책 기조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싯은 우파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출신 경제학자로, 트럼프 1·2기 행정부에서 연이어 경제 참모로 중용됐다.

다만 코로나19 초기 사망자가 2020년 5월께 ‘0명’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른바 ‘큐빅 모델’ 논란으로 시장 신뢰에 적잖은 타격을 입은 전력도 있다. 최근 수년간 그의 정책적 발언 역시 전통적인 중앙은행 독립 논리보다는 트럼프식 정책 노선에 맞춰져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공화당 상원의 반응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마이크 라운즈 의원은 “해싯은 매우 똑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고, 제임스 랭크포드 의원은 “연준 이사회가 존재하는 한 의장이 단독으로 금리를 좌우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조시 홀리 의원은 “대법원이 연준 이사의 대통령 일방 해임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하며 제도적 안전장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외신들에 따르면 최근 채권 투자자들이 미 재무부에 해싯 지명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며 시장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이 전원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공화당에서 단 3표만 이탈해도 상원 인준이 무산될 수 있는 구조다.

연준 전문가들도 해싯 지명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데이비드 웨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해싯이 독립적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결론이 항상 트럼프와 같은 방향이라면 그것이 과연 독립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수년간 해싯은 트럼프식 정책 노선을 충실히 따르며 과거 경제학자로서 쌓아온 신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차기 연준 의장 인선의 공개적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케빈 해싯은 사실상 트럼프식 통화정책을 실행할 정치적 후보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공화당 상원은 연준 이사회 등 제도적 견제 장치를 근거로 독립성 훼손 우려를 일축하고 있는 반면, 금융시장은 연준의 정치화가 현실화될 경우 달러 신뢰도와 국채 시장 전반에 구조적 충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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