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유럽연합(EU)·한국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제시한 대규모 대미(對美) 투자 펀드를 두고, 미국 외신은 여전히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백악관이 투자 합의 사실을 공식 발표했음에도, 실제 집행 단계까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 미국 경제 전문 매체는 최근 보도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해온 투자 펀드들이 구체적인 집행 단계에 이르지 못한 채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5500억달러, EU 6000억달러, 한국 3500억달러 등 총 1조5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이 제시됐지만, 이를 실제 투자로 연결할 집행 구조와 자금 흐름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외신은 투자 약속 발표 이후 시간이 흘렀음에도 공동 투자기구 설립이나 대규모 자금 집행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정상 간 합의와 양해각서(MOU) 수준의 협력에 그치며, 개별 프로젝트 계약이나 자금 집행은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 트럼프식 투자 약속의 반복된 패턴
한국 대통령실과 백악관은 한·미 간 투자 프레임워크에 대해 이미 공식 발표를 내놓은 상태다.
투자 재원 역시 현금 직접 투자와 대출·보증,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결합한 혼합 구조로 제시돼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토대로 전략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외신이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는 데에는 과거 사례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중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를 통해 대규모 구매와 투자가 약속됐다.
이 합의는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서 중국이 미국산 대두를 포함한 농산물 구매를 대폭 확대하기로 한 내용이었지만, 실제 구매 규모는 당초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중동 국가들과 체결된 수천억달러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 역시 상당수가 상징적 선언에 그치거나 일부 프로젝트로 축소 집행된 전례가 있다.
이 같은 경험은 미국 외신이 정상 간 합의나 MOU를 투자 집행과는 분리해 바라보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외신과 업계에서는 전용 투자기구 설립이나 개별 계약 체결, 실제 자금 집행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투자 성과로 평가하지 않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지 전문가들도 비슷한 맥락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듀크대 국제통상법 교수 팀 마이어는 외신 인터뷰에서 “무역 업계는 실제로 발표되는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약속에 실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운영 방식과 자금 집행 메커니즘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투자 구조 역시 외신 분석에서는 변수로 언급된다.
외신들은 한국이 대규모 현금을 일시에 투입하기보다는 대출·보증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중심으로 투자 약속을 이행하기로 한 점을 두고, 재정·외환 부담을 고려한 선택으로 평가하면서도, 실제 투자 집행은 개별 프로젝트 성사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투자 총액이 제시됐더라도 PF 중심 구조에서는 자금이 일괄 집행되기보다 사업별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부 투자 약속은 이미 이행 단계에 들어섰다.
한화그룹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 확장에 5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미국 조선업 투자에 나섰다.
외신들은 이를 전체 투자 구상의 초기 사례로 평가하면서도, 약속된 총액과 비교하면 아직 제한적인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과 사업가적 정치 문법,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 일정도 이러한 신중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과거 사례를 감안할 때, 개별 프로젝트 계약과 자금 집행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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