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땡큐, 반도체와 자동차’
한국의 올해 수출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과 자동차 판매 호조로 사상 최초로 연간 7000억달러(약 1028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연간 수출액이 7000억달러가 되면 수출 규모가 우리보다 앞서왔던 일본과 같은 수준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 수출 시장이 길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미국 등 주요 시장 수출에 빨간 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연간 수출액을 사상 최대로 일궈낸 것은 괄목할 만하다.
이에 대해 업계는 한국이 수출 다변화 등 보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 미국 관세전쟁의 파고를 넘어 수출 초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 한국 7000억달러 vs 일본 7075억달러 순위경쟁 치열
지난 10월 30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계기 한·일 양자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이재명 유튜브]
3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가 최근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서 한국의 11월 수출액은 610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올해 11월이 지난해 11월에 비해 조업일수가 하루 줄었지만 하루 평균 수출이 13.3% 증가해 역대 11월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는 월간 최대 실적이 6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올해 1~11월 누적 수출액은 6402억달러로 2022년(6287억달러) 이후 3년만에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업계 관계자는 “12월 수출액이 지난해와 같은 수준(613억달러)을 기록한다고 가정하면 올해 수출액 7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며 “이는 일본 수출액과 비슷한 규모”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무역협회가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연간 수출은 2011년 8226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해 지난 2024년 수출액이 7075억달러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올해 전체 수출규모를 지켜봐야 하지만 전반적인 수출 감소 분위기에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8000억달러까지 치솟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AI 덕분에 반도체 시장 호황...자동차 수출 증가도 고무적
지난 10월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서울 행사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무대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엔비디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도 이처럼 수출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AI(인공지능) 덕분이다.
전 세계적으로 AI 열풍이 불면서 반도체가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11월 반도체 수출은 38.6% 늘어난 172억6000만달러로 역대 월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반도체 수출은 9개월 연속 플러스 행진을 이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1∼11월 누적 수출액이 1526억달러로 올해가 한 달 남아 있는 시점에서 벌써 연간 최대 수출액을 확정했다”라며 “기존 연간 최대 수출액은 지난해 1419억달러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 세계적으로 AI·데이터센터 투자가 늘어나 고부가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면서 메모리 가격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비교적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외에 자동차 수출 증가도 고무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11월 자동차 수출은 내연기관·하이브리드차 실적 호조에 힘입어 13.7% 늘어난 64억1000만달러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지난달까지 누적 기준 660억4000만달러로 연간 최대 실적 달성까지 48억3000만달러를 남겨둬 연간 최대 실적을 사실상 거둔 셈”이라고 풀이했다.
◇ 관세 파고에 시장 다변화가 수출 지속적인 증가 이끌어
지난 11월 두바이 에어쇼에서 성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동·아프리카 담당(왼쪽)과 칼리드 알 자아비 에지(EDGE) 플랫폼시스템 부문 사장이 UAE 통합 다층방공망 구축과 국방 AI 협력을 포함한 상호협력 양해각서(MOU)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 수출이 이처럼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이 수출을 지속적으로 증가하려면 미국과 중국 등 기존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 남미, 유럽 등으로 시장 다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1~11월 기준 한국의 중국 수출액이 120억7000만달러이고 반도체, 석유제품, 일반기계 등 주력 품목 수출이 고른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에 비해 6.9% 늘어난 점은 고무적”이라며 “그러나 중국도 최근 가파른 산업화 여파로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품목과 경쟁을 벌이는 제품 생산을 늘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고 차기 미국 정부가 출범해도 현재의 관세정책과 유사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이는 한국의 대미(對美)수출이 예전처럼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이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 흔히 동남아로 불리는 아세안(ASEAN)을 비롯해 인도,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으로 수출 상품을 크게 늘려야 한다”라며 “이와 함께 한국이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더 늘려 관세 장벽을 낮춰 교역을 늘릴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수출 품목 다변화에 대한 주문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 외에 바이오/헬스, K- 푸드, K-뷰티, K-콘텐츠 등 ‘K-컬처’ 상품을 대거 발굴해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파고와 중국의 산업 첨단화 등으로 한국의 수출전선이 전처럼 쉽지 않다”라며 “이에 따라 한국이 수출규모를 현재 7000억달러를 뛰어 넘어 1조달러로 가려면 기존 수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첨단화와 다각화로 승부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igyeongcheol@economy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