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이진석 기자]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이 우주 국방의 ‘출발점(발사체)’과 ‘종착점(위성 통신)’을 동시에 국산화하기 위한 핵심 사업에 본격 착수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재사용 발사체용 메탄 엔진 개발을, 한화시스템이 저궤도 위성통신을 위한 우주반도체 개발을 각각 시작하면서, 발사체–위성–통신체계에 이르는 우주전력 밸류체인이 자체 기술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이번 두 사업은 모두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가 관리하는 과제로, 국방부·방위사업청·국기연 주도의 ‘K-우주국방 체계’ 구축 전략이 양방향에서 동시에 실행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 대한항공·현대로템, 재사용 발사체 핵심 ‘메탄 엔진’ 개발 시동

대한항공은 이날 대전 KW컨벤션에서 ‘재사용 발사체용 35톤급 메탄 엔진 개발’ 사업 착수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개발 절차에 들어갔다.

대한항공과 현대로템이 공동으로 구성한 컨소시엄이 주관하는 과제로, 양사는 한국형 재사용 발사체 기술 확보를 위한 핵심 파트너십을 맺고 개발을 함께 추진한다.

이날 회의에는 국방부·방위사업청·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를 비롯해 현대로템, 두산에너빌리티,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서울대·국민대·부산대 등 산·학·연·군 관계자 70여 명이 참석했다.

대한항공은 참석자들이 세부 과제별 기술 로드맵과 단계별 검증 절차를 공유하고 개발 과정에서 예상되는 리스크와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업이 2030년 10월까지 총 490억 원 규모로 추진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이 구상 중인 재사용 우주발사체의 비행·회수 과정을 담은 개념도. 1단 분리 후 착륙 모드로 진입해 지상 또는 해상 플랫폼에 재착륙하는 구조와, 페이로드를 목표 궤도에 투입하는 2단 비행 과정을 시각적으로 나타냈다. [사진 = 대한항공]


메탄 엔진은 기존 케로신(등유) 기반 엔진보다 연소 효율이 높고 연소 중 발생하는 찌꺼기(코킹)가 적어 반복 사용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차세대 발사체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미국 스페이스X의 ‘랩터(Raptor)’, 블루오리진의 ‘BE-4’ 역시 메탄 기반으로 설계돼 있으며, 글로벌 재사용 발사체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업에서 메탄 엔진의 ‘심장’ 역할을 하는 터보펌프 개발을 담당한다. 터보펌프는 액체 메탄과 액체 산화제를 초고압으로 연소실에 공급하는 핵심 부품으로, 영하 180도 수준의 극저온 추진제와 수백 도 고온의 구동 가스를 동시에 견뎌야 한다.

또한 분당 수만 회 이상 회전하는 초정밀 고속 터빈 기술이 요구돼 기술 난도가 매우 높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다년간 축적해 온 항공기 엔진·터보머신 제작 역량과 국방부문 추진기관 개발 경험이 이번 개발에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공적으로 완성될 경우 국내 재사용 발사체 기술의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지고, 향후 군 정찰·통신 위성의 발사 주기와 비용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전망이다.

김경남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장은 “메탄 엔진에 최적화된 고신뢰성 터보펌프 개발을 반드시 완수해 미래 국방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국내 우주 산업 생태계 확장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 한화시스템, 저궤도 위성통신용 ‘우주반도체’ 국산화 시작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인 위성용 디지털 빔포밍 트랜시버 우주반도체의 송신·수신 모듈 개념도. [사진 = 한화시스템]


한화시스템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과 ‘초소형 위성용 다채널 디지털 빔포밍 트랜시버 우주반도체’ 개발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 반도체는 지상과 우주 위성 간 송·수신 신호를 처리하는 핵심장치로써, 디지털 빔포밍(Digital Beamforming, DBF) 기술을 적용한다.

DBF는 여러 안테나 소자를 디지털 신호처리(DSP) 방식으로 제어해 신호를 특정 방향으로 집중 전송하거나 수신할 수 있게 해준다.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설계 유연성이 높고, 여러 채널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소형 위성이라도 보다 정밀하고 효율적인 통신이 가능하다.

특히 다채널 구조 설계 덕분에 소형 통신위성에도 탑재가 가능하며, 적은 수의 반도체 칩으로도 다중 채널 고대역폭 통신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저궤도(LEO) 위성통신망 구축에 필수적인 요소로 평가된다.

우주반도체가 완성되면 해외 수입 부품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 주도의 군 위성통신망뿐 아니라 민간 위성인터넷·데이터 통신 서비스 등 ‘뉴 스페이스(New Space)’ 관련 사업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이번 우주반도체 개발은 한국이 K-우주국방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향후 첨단 우주자산의 국산화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 국방 기술에서 산업 성장으로…우주산업,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부상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우주개발이 그동안 정부·군 중심으로 추진돼 온 이른바 ‘올드 스페이스(Old Space)’ 방식에 가까웠다는 점을 짚었다.

이번 대한항공·현대로템·한화시스템의 동시 기술 개발 역시 전통적인 국책 기반 사업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기존과 달리 민간 기업이 핵심 기술 축적의 주체로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재사용 발사체와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이 동시에 국산화 단계에 들어설 경우, 군 위성망 구축을 넘어 상업 발사 서비스, 초소형 위성, 우주 데이터 산업 등 다양한 민간 시장으로의 확장이 가능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우주 기술이 국방 영역을 넘어 본격적인 산업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우주산업 관계자는 “재사용 발사체와 저궤도 위성통신 같은 핵심 기술은 처음에는 정부 주도로 개발되지만, 일정 수준 국산화가 이뤄지면 민간 기업이 이를 활용해 상업 시장에 진입하는 사례가 해외에서도 많다”며 “이러한 기술 축적이 결국 한국형 뉴 스페이스 생태계를 여는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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