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석현 LG전자 VS사업본부장(부사장)이 글로벌 개발자대회 ‘이클립스 SDV 커뮤니티 밋업’에서 SDV 오픈소스 생태계 구축 관련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LG전자]
[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LG전자가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오픈소스 표준화 전면에 나서며 단순 전장 부품 공급사를 넘어 ‘차량용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4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글로벌 오픈소스 비영리 단체 이클립스 재단과 함께 ‘이클립스 SDV 커뮤니티 밋업’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동 개최했다.
BMW, 현대모비스, 보쉬 자회사 ETAS 등 글로벌 SDV 핵심 기업과 개발자 140여 명이 참석해 차량용 소프트웨어 표준화와 오픈소스 생태계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은석현 LG전자 VS사업본부장은 “LG는 축적된 소프트웨어 역량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SDV 오픈소스 생태계 구축과 SDV 전환 가속화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 차량의 눈과 뇌를 잡아라…LG의 SDV 플랫폼 포지션
LG전자와 퀄컴이 협업해 개발한 차량용 디지털 콕핏 통합 컴퓨팅 플랫폼. 하나의 컨트롤러에서 디지털 클러스터와 중앙정보디스플레이(CID)를 동시에 구동하는 구조다. [사진=LG전자]
행사의 핵심은 LG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S-CORE 프로젝트와 Pullpiri(풀피리) 프로젝트였다.
S-CORE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차량용 소프트웨어의 약 70%를 차지하는 비차별화 영역의 공용화와 표준화를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자동차 한 대에는 이미 1억 줄 이상의 소프트웨어 코드가 탑재되고 있으며 SDV 시대로 갈수록 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중복 개발을 줄이고 표준화를 통해 개발 비용과 시간, 유지보수 부담을 동시에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가 주도적으로 제안한 Pullpiri 프로젝트는 S-CORE 기반 위에 다양한 기업의 차별화 소프트웨어를 안정적으로 얹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운용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LG는 이와 함께 글로벌 SDV 오픈소스 표준 단체인 SOAFEE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는 GM·마그나·위프로가 설립한 차량용 소프트웨어 마켓플레이스 ‘SDVerse’에도 합류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의 디지털 클러스터에 표시된 ADAS 주행 보조 화면. 차량의 ‘눈’ 역할을 하는 전방 카메라와 영상 인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차로와 전방 차량을 실시간 인식한다. LG전자는 이 영역의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글로벌 완성차에 공급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자동차 산업은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 산업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글로벌 완성차 산업은 이미 ‘차량의 눈과 뇌를 누가 통제하느냐’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 단계로 넘어간 상태다.
LG전자는 이 과정에서 차량용 IVI(인포테인먼트) 플랫폼과 디지털 클러스터, OTA(무선 업데이트) 솔루션을 글로벌 완성차에 양산 공급하고 있는 Tier-1 전장 업체다.
GM, 현대차, 벤츠, BMW 등 주요 완성차 일부 모델에 LG의 IVI 헤드유닛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실제로 탑재돼 있다.
디지털 계기판 역시 단순한 디스플레이 공급을 넘어 클러스터 구동용 기본 UI 프레임워크와 렌더링 엔진을 LG 플랫폼 위에서 구동하는 구조가 다수 적용되고 있다.
LG는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IVI와 ADAS, ECU를 분리해 원격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OTA 플랫폼도 B2B 형태로 공급하고 있다.
통신 표준 자체를 지배하는 역할은 보쉬, 콘티넨탈, 퀄컴 등의 영역이지만 상위 애플리케이션과 통신을 연결하는 미들웨어 계층은 LG가 담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계층은 결국 차량 데이터가 어디로 흐를지를 결정하는 핵심 관문에 해당한다.
◇ ‘모빌리티의 구글’을 노린다…SDVerse·알파웨어로 플랫폼 승부수
LG전자와 미디어텍이 협력해 구현한 SDV 기반 차량용 디지털 콕핏 플랫폼. 운전자용 내비게이션과 후석 엔터테인먼트 화면을 단일 시스템에서 동시에 구동하는 구조다. [사진=LG전자]
LG의 SDV 전략은 단순한 차량 내 콘텐츠 서비스 확대가 아니라 콘텐츠가 차량에 탑재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운영체제(OS), 미들웨어, 앱 유통 플랫폼을 선점하려는 구조적 포석에 가깝다.
LG가 최근 합류한 차량용 소프트웨어 마켓플레이스 ‘SDVerse’ 역시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차량용 앱스토어가 본격화될 경우 운전, 주차, 충전, 정비, 보험, 차량 관제, B2B 플릿 관리 소프트웨어까지 차량 내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구조가 형성되며 LG는 이 시장에서 플랫폼 운영자 지위를 확보하려는 구상이다.
LG가 구축 중인 통합 SDV 소프트웨어 패키지 ‘LG 알파웨어(LG αWare)’도 이러한 전략을 뒷받침한다.
알파웨어는 차량용 엔터테인먼트 솔루션 ‘플레이웨어’, AR·MR 기반 길안내 및 위험 정보 제공을 담당하는 ‘메타웨어’, AI 기반 인캐빈 센싱과 주행 보조 기능을 수행하는 ‘비전웨어’로 구성돼 있다.
SDV 확산과 함께 이러한 소프트웨어 기능들은 차량의 기본 상품성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Android Automotive) 도입을 두고 데이터 주권 상실과 플랫폼 종속 리스크를 동시에 우려하는 점도 LG에게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량 데이터는 향후 보험, 정비, 자율주행, 구독 서비스, 중고차 가격 산정 등으로 확장되는 핵심 자산이다.
구글이 차량 OS를 장악할 경우 데이터 흐름과 업데이트 정책이 구글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대안 플랫폼 확보에 대한 수요를 동시에 키우고 있다.
LG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요구를 흡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LG전자 VS사업본부는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IVI, OTA,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차량의 사용자 경험과 데이터 흐름을 동시에 담당하는 구조로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차량용 플랫폼은 한 번 채택되면 차종 단위로 수년간 유지되는 구조적 특성상 교체 비용이 크고 장기적인 협력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LG의 SDV 전략은 단순한 전장 부품 공급 확대를 넘어 자동차 산업의 수익 구조가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구독과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대응하는 중장기 포석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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