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 = 대통령실]
[이코노미 트리뷴 = 이경철 기자] 한국 정부가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암(ARM)과 손잡고 반도체 설계인력 양성에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이하 산업부)는 Arm과 향후 5년간 반도체 설계인력 1400명을 양성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5일 체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르네 하스 암 대표를 만나 MOU를 맺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산업부와 ARM이 워킹그룹 가동해 반도체 특화 교육기관인 가칭 '암 스쿨' 설립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인력 약 1400명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는 (한국이)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강화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ARM은 어떤 회사
반도체 설계 기업 ARM 홀딩스 로고. [사진 = ARM]
ARM은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다. 즉, 반도체를 만들지 않고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이다.
1990년 11월에 설립한 ARM의 원래 회사 이름은 ‘Advanced RISC Machines’이며 이것을 줄여 ARM으로 부른다.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는 컴퓨터 명령어를 단순하게 줄여 CPU(중앙처리장치) 처리 속도를 높이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반도체 설계 기법을 뜻한다.
쉽게 설명하면 복잡한 명령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ARM은 칩(반도체)을 만들지 않고 반도체 설계와 IP(지적재산권)을 가진 회사"라며 "이 업체는 CPU 코어 설계, GPU(그래픽처리장치) 설계, NPU(신경망처리장치) 설계 등 반도체 설계 그림을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ARM이 반도체 산업 강자로 평가받는 데에는 스마트폰에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 설계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에 따라 미국 AI업체 엔비디아를 비롯해 퀄컴, 애플 등이 ARM의 반도체 설계도를 이용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RISC는 반도체 칩이 가동될 때 명령어가 전체의 20% 정도만 사용되는 점을 토대로 자주 사용하는 명령어에 집중한 방식"이라며 "RISC가 명령어를 잘게 쪼개 사용하는 특성 때문에 연산 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모량도 적은 점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반도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에 매료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6년 ARM을 320억 달러(약 47조원)에 인수했다. 이에 따라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의 약 90%를 거머쥔 최대주주다.
◇ ARM이 한국과 손잡고 얻는 효과는
업계에서는 ARM이 표면상으로 한국의 첨단반도체 설계 인력을 육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모습이지만 ARM의 사업구조를 보면 보다 ‘큰 그림’이 감춰져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ARM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설계 IP를 제공하고 해당 설계를 사용해 칩이 생산될 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사업구조를 갖췄다“라며 ”이에 따라 ARM은 반도체 제조나 생산 인프라에 드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지 않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수십억 개 칩에서 수익을 꾸준히 창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ARM은 반도체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물인터넷(IoT), 데이터센터,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 ARM 기반 설계를 활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손정의 회장은 첨단 기술과 관련해 인터넷 → 모바일 →IoT → 그리고 AI(인공지능)로 이어지는 기술 패러다임을 주장해왔다“라며 ”이에 따라 ARM은 한국 반도체 설계인력 양성을 계기로 반도체 설계(IP) → AI/클라우드/데이터센터에 이르는 첨단 생태계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ARM은 세계 각국에서 특허 6800개를 보유하고 있어 누구나 돈만 내면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다“라며 ”이에 따라 ARM은 엔비디아, 구글, 삼성전자 등 빅테크들이 주요 고객이며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하고 는 AI 열풍을 활용해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ARM이 한국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 도와 얻는 혜택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르네 하스(Rene Haas) Arm CEO와 한국 반도체·AI 산업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 시장은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를 담당하는 메모리 반도체 등으로 크게 양분된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이지만 팹리스·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 설계-제조는 매우 저조한 편이다.
이를 보여주듯 한국은 반도체 설계(IP) 분야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미국과 대만 등에 크게 뒤처져 있다.
이에 따라 ARM과 산업부는 이번 MOU를 통해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를 위해 양측은 반도체 설계 기술 교류와 생태계 강화, 대학 간 연계 강화, 연구개발(R&D) 등에 나설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쉬울 일이 없는 ARM이 한국과 손잡는 데에는 팹리스와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역량이 떨어지는 한국의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을 도와줘 장기적으로 “ARM 설계를 쓸 팹리스와 시스템반도체 업체를 늘릴 수 있어 미래의 라이선스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는 “특히 AI, 데이터센터, 시스템 반도체로 수요가 커지고 있어 이와 관련한 설계 전문 인재가 많아지면 ARM 기반 설계 수요도 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얻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ARM 설계 IP나 설계 노하우를 직접 활용하면 시스템 반도체 설계 → 생산 → 제품화라는 완전한 밸류체인(가치사슬)을 만들 수 있다”라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반도체 설계 노하우까지 거머쥐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 파운드리 중심에서 벗어나 ‘메모리 + 파운드리 + 설계(IP) + 팹리스’를 아우르는 복합 생태계를 만드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으로서는 기존 장점을 유지하면서 미래 수요에 대비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분석했다.
igyeongcheol@economytribu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