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메르세데스-벤츠에 약 2조원대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그간 하이엔드급 중심이던 양사의 협력 구도는 중저가 전기차 영역까지 본격 확대됐다는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은 8일 벤츠 측과 2조601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 체결일은 지난 5일이며, 공급 기간은 2028년 3월 1일부터 2035년 6월 30일까지다. 공급 지역은 북미와 유럽이며, 별도의 선급금이나 계약금은 없는 구조로 설정됐다. 계약 규모는 LG에너지솔루션의 2024년 연결 기준 매출 대비 약 8% 수준에 해당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46시리즈. [사진 =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과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 2년간 연속적으로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전략적 동맹 관계를 구축해 왔다.

양사는 2024년 10월 북미·기타 지역 50.5GWh, 2025년 9월 미국 75GWh, 유럽 32GWh 규모의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으며, 당시 배터리는 모두 고성능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에 적용될 배터리가 중저가형 전기차 모델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벤츠는 앞서 2027년까지 글로벌 시장에 40종 이상의 신차를 출시하겠다는 대규모 전동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프리미엄급부터 엔트리급까지 전 차급을 아우르는 전기차 라인업 확대가 예고된 만큼, 배터리 조달 역시 고성능 중심에서 표준·중저가용까지 다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고성능 하이엔드 모델에는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를, 표준·중저가 모델에는 고전압 중니켈(Mid-Ni) 파우치형과 LFP 배터리 등을 공급할 수 있는 전 차급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이번 계약은 이러한 전략이 벤츠의 중저가 전기차 라인까지 본격 확장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2024년 벤츠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전기차 배터리 정보. [자료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홈페이지]


그동안 벤츠의 중저가 전기차 라인업에는 CATL·BYD 등 중국 배터리 탑재 비중이 높았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전략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화재 사고가 잇따르면서 ‘중국산 배터리 리스크’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확산됐고, 이는 결과적으로 벤츠 브랜드 이미지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특정 국가의 배터리가 더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복된 이슈가 소비자 인식에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의 중저가 차량용 배터리 계약은 벤츠가 중저가 전기차에서도 ‘안전·신뢰’ 이미지를 다시 전면에 세우려는 전략적 전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지형 변화 신호로도 읽힌다.

그동안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왔고, 이 과정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위축돼 왔다.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 계약을 계기로 유럽 및 글로벌 시장에서 잃었던 점유율을 되찾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사진 = LG그룹]


한편 이번 계약을 앞두고 지난달 13일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회장은 서울 여의도 LG윈타워를 방문해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LG그룹 주요 계열사와 전장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당시 “LG와 메르세데스-벤츠는 혁신·품질·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며 “양사의 강점을 결합해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세워갈 차량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벤츠가 중국 배터리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고 한국 배터리로 축을 옮기는 분기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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