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트리뷴 = 김용현 기자] 미국이 중국의 전략자원 독점 구조에 대응해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핵심 전략자원 생산 거점 구축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희토류와 안티모니·게르마늄 등 첨단 산업과 안보에 직결되는 자원을 중심으로,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가공 체계를 갖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최근 중국이 희토류와 전략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미국은 동맹국 기업을 중심으로 ‘탈중국 공급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련·정제 기술을 이미 확보한 데다, 주요 동맹국 가운데서도 중국과의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한국 기업들이 신뢰 가능한 공급망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 고려아연, 美 남동부에 10조원 규모 전략광물 제련소 추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사진 = 고려아연]


고려아연은 미국 남동부 지역에 약 10조원 규모의 전략광물 제련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광물을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고려아연과 미국 측이 합작법인(JV)을 설립해 추진한다.

총 투자금 가운데 약 2조원은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 방산 전략 기업들이 직접 투자자로 참여할 예정이며, 나머지는 현지 차입을 통해 조달하는 구조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단순한 정책 지원을 넘어 자본 투자에 직접 나선다는 점에서, 공급망 재편을 겨냥한 전략적 성격이 강한 사업으로 평가된다.

제련소에서는 고려아연이 울산 온산제련소에서 생산해온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광물 상당수가 현지에서 생산될 전망이다.

온산제련소에서 검증된 습식·건식 결합 통합 공정이 그대로 적용돼, 방산과 반도체, 첨단 전자 산업에 필요한 소재 공급 거점 역할을 맡게 된다.

입지는 미국 내 60여 개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용수와 전력 조달이 용이한 남동부 주요 도시로 잠정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이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 최대 물량’을 요구한 만큼 사업 추진 속도도 상당히 빠를 것으로 관측된다.

미 국방부가 투자자로 참여할 경우 고려아연은 사실상 미국의 안보 자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LS전선, 美 희토류 영구자석 공장 검토…모빌리티 소재 강화

LS에코에너지 베트남 생산법인 전경. [사진 = LS전선]


LS전선은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시를 유력 후보지로 희토류 영구자석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다.

희토류 영구자석은 전기차 모터와 풍력발전기, 로봇, 전투기, 도심항공교통(UAM) 등 첨단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다.

현재 글로벌 희토류 영구자석 생산의 약 85%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내 생산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희토류 채굴보다 중간재인 자석과 소재 단계부터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LS전선은 희토류 산화물 확보부터 금속화, 자석 제조에 이르는 밸류체인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회사 LS에코에너지를 통해 베트남과 호주 등에서 정제된 희토류 산화물을 확보하는 방안도 병행 중이다.

신규 공장은 LS전선이 건설 중인 미국 해저케이블 공장 인근 부지가 유력하다.

생산된 영구자석은 완성차 업체와 전장 기업 등에 공급될 예정이며, 기존 세각선(구리선) 사업과 결합해 모빌리티 핵심 소재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LS전선은 이미 GM과 현대차 등에 세각선을 공급하고 있어, 영구자석 생산까지 더해질 경우 미국 내 전장·모빌리티 공급망에서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제련·정제·중간재…기술 장벽 높은 영역에 집중

지난 10월 열린 미중 정상회담 당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 미 백악관]


고려아연과 LS전선의 미국 투자 움직임은 중국의 전략자원 통제 강화에 대응해 미국이 동맹국 기업을 중심으로 핵심 자원 확보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단순한 원광 확보를 넘어, 기술 장벽이 높은 제련·정제·중간재 단계에서 한국 기업들이 실질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들 분야는 막대한 설비 투자와 축적된 공정 노하우, 환경·안전 규제에 대한 대응 역량이 동시에 요구돼 단기간 내 대체가 어렵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

미국이 직접 자본을 투입하거나 현지 생산을 요구하는 것도, 단순한 조달 차원을 넘어 구조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제련·정제 기술과 글로벌 생산 경험을 갖춘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도 한층 부각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역할이 일회성 투자에 그치기보다, 미국 산업과 방산 생태계 전반과의 연계 속에서 중장기적인 협력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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